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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Good Words

생텍쥐페리,『인간의 대지』중에서

왠만하면 감동받지 않는 나로서도 시리도록 가슴아픈 이야기이다. 

"눈 속에서는 생존본능이라는 게 사라진다네. 이틀, 사흘, 나흘을 걷고 나면 자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지거든. 나도 그랬어.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지. '내 아내는 생각하겠지. 만약 내가 살아있다면 걸을 거라고. 동료들도 내가 걸을 거라고 믿을 거야. 그들은 모두 나를 믿고 있어. 그러니 걷지 않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 이렇게 말이야."
그래서 자네는 계속 걸었네. 얼어서 부풀어 오른 발이 들어갈 수 있도록 매일 조금씩 나이프 끝으로 구두 속을 잘라냈지.
(중략)
자네가 세상에서 평온해지려면 눈을 감기만 하면 되었지. 이 세상에서 바위, 얼음, 눈을 지워버리려면 말이야. 그 기적 같은 눈꺼풀을 감자마자 타격도, 추락도, 갈기갈기 찢긴 근육도, 타는 듯한 동상도, 황소처럼 끌고 가야 할 수레보다 무거운 그 삶의 무게도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테지. 자네는 이미 그 추위의 맛을 느낄 수 있었어. 이젠 독으로 변해서 흡사 모르핀과도 같이 자네를 천상의 기쁨으로 채워주는 그 추위를. 자네의 생명은 심장 주변에 피신해 있었지. 무엇인가 부드럽고 소중한 것이 자네 마음 한가운데서 웅크리고 있었네. 자네의 의식은 그때까지 고통으로 가득 찬 짐승같았던 육체의 먼 부분들을 조금씩 포기했고, 대리석 같은 무관심을 보이고 있었어.
(중략)
"나는 수많은 징조로 마지막을 짐작했네. 그중 하나는 이런 거였지. 대략 2시간마다 구두를 더 잘라내거나 부풀어 오른 발을 눈에 문지르거나 아니면 단지 심장을 쉬게 하기 위해 쉴 수 밖에 없었는데 마지막 며칠 즈음에는 기억력이 없어지는 거야. 무작정 한참을 걷다가 번쩍하고 정신이 들었지. 나는 매번 무언가를 잃어버렸네. 처음에는 장갑 한 짝이었는데, 그 추위에 그건 심각한 일이었지! 나는 그것을 내 앞에 놓아두었다가 챙기지 않고 다시 출발했던 거야. 다음에는 시계였어. 그 다음엔 나이프. 그 다음에는 나침반. 매번 쉴 때마다 나는 점점 더 헐벗은 상태가 되어갔네······. 살길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어. 또 한 걸음. 언제나 똑같은 그 한 걸음을 다시 내딛고 또 내디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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